1404년 조선 태종이 노루를 쫓다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낯 뜨거웠던 왕은 좌우를 둘러보며 "사관(史官)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명했죠. 그러나 사관 민인생은 왕의 낙마 사실은 물론, "사관에게 알리지 말라 하셨다"는 왕의 군색한 명령까지 실록에 적어 넣었습니다.
서슬 퍼렇던 왕조 국가의 정점조차 지울 수 없었던 지엄함입니다. 권력의 치부조차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는 꼿꼿한 기록 정신은 적어도 600년 전 한반도에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겝니다.
수 세기가 지난 요즘,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역사 왜곡 공방을 바라보다 든 생각입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사실을 훼손했는지, 혹은 정당한 표현의 자유인지를 따지는 소란 밑바닥에는 조선의 사초(史草)보다 빈곤하고 부끄러운 '기록 파괴'라는 집단적 추태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단초로 한 미스터리 추리물(?) 스릴러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른 'JFK'가 있었고요. 가깝게는 박정희 피살 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도 언급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살인의 추억'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 삼아 시대를 비틀었단 점에서 비슷한 유형으로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다 찾아보니 JFK에서는 비슷한 논란이 있었더군요. 1991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가 개봉했을 때, 미국 사회 역시 발칵 뒤집혔습니다. 케네디 암살의 배후로 CIA와 군산복합체를 암시한 이 영화에 대해 일부 언론과 역사학계는 "망상에 찬 역사 오염"이라며 비판했습니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부추긴다는 경계의 시선도 있었죠.
그러나 영화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올리버 스톤은 움추러들지 않고 각종 토론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워런 보고서야말로 국가 권력이 억지로 끼워 맞춘 거대한 신화"라며, 예술가는 억압된 의혹을 질문의 형태로 던지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대항 신화'를 구축할 권리가 있다고 맞섰습니다. 수많은 수사 자료를 반세기가 넘도록 봉인해 둔 미국 정부의 비밀주의가 바로 음모론의 온상이라는 시각도 제시했더랬습니다
결국 영화 개봉 이후 미국 시민의 70% 이상이 케네디 암살 배후에 조직적 음모가 존재한다고 믿게 되면서, 의혹은 국가적 여론으로 번졌습니다.
비판과 반박, 논란의 확대까지는 '암살자(들)'의 사례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그러나 미국에게는 창작자에 대한 고발이나 출연진 협박 대신, 컨센서스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지닌 다른 '토대'가 있었습니다.
여론에 응답한 미 의회는 1992년 만장일치로 'JFK 암살기록수집법'을 제정했고, 독립 조사 기구를 통해 국가기록관리청(NARA) 서고에 봉인되어 있던 500만 쪽의 기밀문서를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았을지언정 정보기관의 감시 실패와 해외 국가원수를 암살하려 했던 각종 비밀공작의 민낯이 폭로됐습니다.
'날것의 1차 기록'을 통해 대중의 의혹을 제한적이나마 돌파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어쩌면 미국에서 벌어진 논란은 "정부가 쥐고 있는 캐비닛의 빗장을 푸는 싸움"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현대사는 되돌려 봅니다. 대한민국 파쇼 정권의 역사는 빗장을 풀기는커녕 "캐비닛 자체를 불태워 없앤 야만의 점철"이었습니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의문의 탄환과 음성 테이프는 이후 어떤 공식 창고와 서고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1979년 10·26과 12·12 군사반란 직후,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는 중앙정보부를 접수하며 문제 소지가 있는 공작 문서와 내부 사찰 자료들을 소각했습니다.
야만은 민주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8년 사상 첫 수평적 정권 교체를 앞둔 겨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청사에서는 트럭 수십 대 분량의 기밀문서가 파쇄기로 갈려 나갔고, 소각장 굴뚝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며칠 밤낮을 피어올랐다는 진술이 존재합니다. 국가기관의 기록물 보존을 강제하는 '공공기록물법'은 20세기가 다 끝나가는 1999년에야 제정되었고, '대통령기록물법'은 2007년에야 첫발을 뗐습니다.
스스로 기록을 지워버린 야만의 업보는 국가적 민망함으로 현실화됐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언론은 5·18 광주, 10·26 사건, 8·15 사건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 정부 서고가 아니라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과 CIA의 기밀 해제 문서를 뒤적여야 하는 굴욕과 마주합니다. 드러날 수 없게 된 진실로 인해 증폭되는 갈등 또한 후대가 감당하는 몫입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한 영화에서 우연히 접한 이후 머리에 남았던 사마천의 문장입니다. 사마천의 이 심오한 통찰은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의 진원지를 정확히 겨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명한 기록이라는 햇빛을 쬐지 못한 사건은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권력 아래 붓이 꺽이고 파쇄기가 동작한 자리에는 필연적으로 달빛만이 내려앉습니다. 그렇게 햇빛을 잃은 역사는 의혹과 허구, 적반하장이라는 괴물이 됩니다.
역사를 달빛 아래로 밀어넣은 주체는 질문을 던진 영화가 아니라, 진실을 소각로에 처넣고 파쇄기 뒤로 숨어버린 국가 권력과 부역자들입니다. 창작자의 상상력을 단죄하고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들이대기 전에 기록을 파괴한 범죄를 상기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러한 범죄자를 선거 용지로 옹호해온 행위를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숨기려 하는 자가 범인입니다. 증거를 인멸하고 범죄자를 은닉하는 행위도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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