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질&시사2012. 12. 16. 04:22



# 며칠 전 '그들의 괴벨스'였던 윤여준씨가 찬조연설을 했습니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단어 하나, 심지어 마침표 하나하나가 허투루 사용된 것이 없더군요.


혹자는 그 나이에 보여주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전달력에 감탄했지만,


저는 그 문장의 완성도와 구성, 명백한 동시에 폭넓은 설득 대상, 순식간에 설정하는 프레임과 그 프레임의 명확성, 교묘하게 구사되는 설득기법들에 완전히 놀라버렸습니다.


호감이나 믿음이 아니라, 순전히 능력만으로 누군가에게 이렇듯 감탄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입니다.





#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분노'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자신의 원동력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던 것으로 얼핏 기억합니다. 제 고민의 지점과 일치하는 부분으로 다가와 무척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도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친일, 매국, 살인, 고문, 부정축재, 국민 분열, 독재 등등... 이러한 범죄를 자행한 세력들과 그들의 콘크리트 지지층.


넓게는 국민의 40%에 이르는 그들을 수용해야 하는지, 그래야 한다면 어디까지 수용하는 것이 맞을지, 그리고 수용할 수는 있을지라고 간단히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수용'과 함께 '설득', 또는 '인정'  등등의 용어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쉽게 내려질 구분도 아니고, 해결책이 당장 나올 수도 없을 겁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지난한 세월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피와 증오가 아닌, 땀과 노력, 그리고 시간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 윤여준씨 찬조연설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문 후보가 싫어할 얘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시는가?
분노의 정치, 분열의 정치를 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문 후보는 진지한 표정으로 저의 지적을 인정하면서
그 부분을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말했습니다.




음... 개인적으로 윤여준씨의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지적에 일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참여정부뿐 아니라 실은 제 생각에 대한 인정이기도 합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인정했다는 것이, 또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말한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더 큰 식견과 마음, 통찰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를 친구로 인정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 오늘 본 진중권씨 칼럼이 이러한 맥락에서 마음에 밟혔습니다.


대통합이라는 프레임과 시대정신을 다분히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히더군요. 그래서 반가왔습니다.


한편으론 민주화 세력(표현이 애매합니다.. 반대는 산업화 세력인가요...?)이 이제는 이런 목소리를 넉넉히 낼 수 있을 만큼, 성숙하고 여유 있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또한 무척이나 반가운 일인 것 같습니다.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는 칼럼입니다. 야밤에 불펌해 공유합니다.






[진중권의 세상보기]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이 나라에는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애국자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애국자가 있다.”

언젠가 이준석씨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지금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 이 대목을 듣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그의 감동은 또한 나의 것이기도 하다.

미합중국의 국민은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든, 그 전쟁에 반대하든 ‘애국자’가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선거 때마다 ‘빨갱이’ 아니면 ‘매국노’가 되어야 한다.

인구 절반의 빨갱이에, 나머지 절반은 매국노라면,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지킨단 말인가? 왜 우리는 서로 상대로부터 국민 될 자격을 박탈하려 드는 걸까?

나는 ‘국민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 물론 문재인-안철수-심상정이 함께 하는 정부만이 이 나라를 미래로 이끌 수 있으며, 박근혜-이회창-이인제가 함께 하는 정권은 이 나라를 과거로 퇴행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은 당연히 나와는 정반대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본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 만큼은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아니, 그들의 마음이 어쩌면 나의 것보다 더 뜨거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부터 “이 나라에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애국자들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애국자들이 존재한다.”고 말하자.

언제나 보수당만을 지지하는 어르신들의 생각은 내게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분들은 전쟁을 겪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광주의 상처를 내가 평생 안고 살아가듯이, 그 분들 역시 직접 경험한 전쟁의 외상을 평생 안고 살아오셨고, 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실 게다. 그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의 유세장에 모인 어르신들은 저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계셨다. 젊은 세대는 그 분들이 우리의 미래를 흘러간 과거에 묶어 놓는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그들의 고리타분함을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높은 투표참여율로 드러나는 그 분들의 애국적 열정만은 존엄한 것이어서 우리의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선거 날 박근혜 후보를 찍으려는 부모님을 효도관광 보내 드리겠다’는 말은 행여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든,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투표에는 모든 애국자들이 참여해야 한다. 설사 지지하는 후보가 나와 다르더라도, 집안의 나이 드신 애국자들과 함께 투표장에 나가자.

나를 부끄럽게 하는 분들이 또 있다. 인도에서, 멕시코에서, 유럽에서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심지어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20시간, 40시간을 걸려 투표장으로 나간 재외국민들. 그 먼 시간을 들여 투표장으로 향하던 그 분들의 가슴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나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리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으나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열정’의 온도로 서로 경쟁하는 마당. 우리의 선거도 이제 그런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서로 비판하더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서로 의심하지 말자.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승자에는 영광을, 패자에게는 명예를 주자.

92%에 달한다는 60대 이상의 투표 의향. 그걸 보고 푸념하는가? 안도현 시인의 말대로, 어차피 인생은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그 분들은 전쟁과 산업화의 과정에 제 한 몸 다 태워 기꺼이 연탄재가 되셨다. 재가 되어서도 아직 저렇게 뜨겁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