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질&시사2018. 2. 28. 10:55


저에겐 정치인들을 판단하는 임의의 기준이 있습니다. 

'人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지 여부'라고 표현하곤 하지요. 


정치인들이란 꽤나 신기한 존재입니다.

개인적으로 접해보면 꽤나 똑똑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강력한 전달력을 보유했으며 열정 또한 지녔습니다. 

많지 않은 경험이나마 제가 꼴보수 수구라고 판단하는 정당의 인물들도 몇몇은 그랬던 듯 합니다.


그러나 그렇듯 놀라운 개인적 매력을 지닌 이들이 터무니없는 말과 행동(그리고 그 이면의 착각들)을 표출하는 걸 종종 봅니다.

주변의 고만고만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다보니, 그리고 그 장벽을 넘어설 능력이 없다보니 쉽게 매몰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애석하게도 사람의 장벽을 넘을 수 없는 건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


현재 제가 이 기준 측면에서 조용히 기대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도 났더군요. 후원금 1위를 기록했다고 말입니다. 그 사람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면, '바람몰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여튼 이러한 생각이 종종 들었던 요즈음에, 

그리고 각종 성추문 폭로가 이어지는 현 상황 속에서,

꽤나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장님, 이사님, 대표님들, 그 밖의 여러 성공(?)하신 님들께 공유해봅니다. 





오만증후군 : 권력이 뇌를 망친다

http://www.vop.co.kr/A00001228412.html


권력이 약이라면 그 부작용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권력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고 부패시킬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자신이 엄청난 성적 매력이 있다고 믿기까지 했다. 하지만 권력이 뇌를 손상시킬 수도 있을까?


작년 가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웰스파고(미국 4대 금융그룹)의 CEO 존 스텀프에게 웰스파고 직원 5천 명이 고객을 위해 차명계좌를 만든 일에 책임을 물으며 온갖 방식으로 그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신선한 질문과 의견들보다 더 눈에 띈 것은 스텀프의 태도였다.


스텀프는 분명히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스텀프는 청문회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사과를 하면서도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반항적이거나 의기양양하지도, 진정성이 없어 보이지도 않았다.


스텀프는 그냥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는 마치 5천 명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자기한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스텀프 행성’에서 지구에 갓 도착해 시차에 시달리는 여행자 같았다. “지금 장난하십니까?”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이네요” 같은 직접적인 비난에도 스텀프는 정신을 못 차렸다.


스텀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그보다 더 좋은 질문이 있다. 스텀프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권력은 환자의 공감능력을 모두 죽이는 종양과 같다

역사학자 헨리 애덤스가 “권력은 마치 환자의 공감능력을 모두 죽이는 종양과 같다”고 했을 때, 그는 비유를 든 것이었지 의학적인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대커 켈트너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심리학과 교수가 수년 간 연구와 현장 실험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헨리 애덤스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켈트너 교수는 20년 간 연구를 통해 연구대상에게 권력을 줄 경우 그들이 마치 정신적 외상을 유발하는 뇌 부상을 당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연구대상들은 더 충동적이 됐고, 위험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졌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능력이 하락했다.


캐나다 온타리오 맥매스터 대학교 신경과학자인 수크빈더 오비 교수도 최근 비슷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오비 교수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켈트너 교수와 달리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학자다. 그런데 오비 교수가 권력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머리를 자기장 뇌자극기에 넣었더니, 권력이 공감능력의 기초라 여겨지는 ‘미러링(mirroring)’이라는 특정 신경작동과정을 저해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오비 교수의 이런 연구결과는 켈트너 교수가 명명한 ‘권력의 역설’에 신경학적 근거를 제공했다. 권력자가 권력을 얻으면 권력 획득에 필요했던 자질의 일부를 잃는 현상 말이다.


권력 획득 이후 사람의 특정 자질이 없어지는 현상은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입증됐다. 2006년 한 실험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이마에 ‘E’를 그려 보라”고 지시했다. 이는 타인의 시각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험 결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이 과제에 훨씬 많이 실패했다. 자신의 관점에서 글자가 보이도록 ‘E’를 거꾸로 쓴 것이다. (2008년 올림픽에서 미국 성조기를 거꾸로 들어 화제가 됐던 조지 W. 부시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다른 실험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림에 그려진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 혹은 동료가 어떤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의 표정이나 몸짓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향도 문제를 악화시킨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래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으로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권력자가 되면 다른 사람을 흉내 내거나 맞장구를 치는 일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웃을 때 함께 웃고, 다른 사람이 긴장할 때 함께 긴장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런 행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인이 경험하는 감정을 함께 느끼고, 타인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켈트너 교수는 “권력을 가지면 타인의 경험을 되씹지 않는다”며 이것이 “공감능력의 결여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뤄지는 ‘미러링’

‘미러링’은 이보다 더 미묘하고 감지하기 어려운 ‘흉내 내기’의 일종이다. 미러링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머릿속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 중 일부분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 ‘공감’ 반응을 보이며 활성화된다. 이를 ‘대리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미러링을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오비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실험 대상들에게 다른 사람이 고무공을 꼭 쥐는 영상을 보여줄 때 활성화하려 했던 것도 뇌의 이 부분이었다. 그런데 권력이 별로 없는 실험 대상자들은 별 문제없이 미러링 반응이 감지됐다. 본인이 공을 꼭 쥐려면 필요한 신경연결통로(neural pathway)가 강력하게 활성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들의 뇌가 보여준 활성화 정도는 훨씬 약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미러링 반응이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의 미러링 반응은 마치 마취된 것처럼 작동이 둔화됐던 것이다.


실험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지속적인 권력을 주지 않았다. 다만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과거에 주도권을 쥐었던 경험을 떠올리라고 주문함으로써 권력을 지녔을 때의 기분을 되살리게 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오후를 한번 보냈다고 이들의 뇌가 구조적으로 손상을 입을 리는 없다. 그러니 (실험을 마치고) 권력을 지녔던 기분이 사라질 때쯤이면 실험에 참가했던 대학생들도 마취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분이 오래 간다면, 이를테면 자신만만한 월가 분석가들이 분기가 거듭돼도 계속 훌륭한 실적을 올리고 이사진이 이들에게 보너스를 계속 제공하며, ‘포브스’가 그들에게 “일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 준다면, 의학에서 말하는 뇌의 ‘기능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역지사지를 하지 않더라도 역지사지의 능력을 보존할 방법이 과연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오비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한 후속 실험도 진행했다. 오비 교수는 실험대상자들에게 미러링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뒤 “의식적으로 미러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 주세요”라거나 “미러링을 하도록 노력하세요”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똑같았다. ‘노력’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우울한 연구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식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권력이 사람의 지식이나 자질을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효율성이 높아지는 대신 더 둔해진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권력 획득 이후 어떤 자질을 잃게 되더라도 그것이 해를 끼치는 일은 적다고 얘기할 수 있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권력은 주변적인, 사소한 정보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그 때문에 권력자는 더 둔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력자가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집단에 꼭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인 수잔 피스크에 따르면 권력자는 사람을 세심히 관찰할 필요가 줄어든다. 예전에는 남들로부터 자원을 겨우 얻어내야 했지만, 권력을 획득하면 그 자원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적인 조직에는 권력의 명령 사슬의 작동을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이는 뉴스 헤드라인에 임원들의 자만심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수많은 리더들은 선을 넘어 비생산적인 아둔함에 빠져버리기 십상이다.


사람들의 개별적 특성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리더들은 점점 더 고정관념(stereotype)에 의존한다. 그리고 다른 연구들이 밝혔듯이 리더들은 눈이 어두워질수록 자신의 개인적인 통찰력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권력이 뇌를 손상시키는 현상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권력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가끔이라도 권력자에게 ‘권력이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켈트너 교수에 따르면 권력은 일종의 ‘정신 상태’다. 실험자들의 뇌는 권력이 없었을 당시를 기억할 때 현실과 교감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의 뇌는 권력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성을 되찾는다. 그리고 만약 ‘권력이 없다’는 정말로 강렬한 경험을 하게 만들면, 이는 영구적인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 2월 학술지 ‘금융저널(The Journal of Finance)’에는 놀라운 논문이 발표됐다. 어린 시절 상당한 사망자를 낳은 자연재해를 겪은 CEO들이 그런 경험이 없는 CEO들보다 훨씬 위험 회피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것이다.(다만 논문의 공동저자인 라그하벤드라 라우 캠브리지 대학교 교수는 “역으로 사망자가 별로 없는 자연재해를 겪은 CEO들이 위험을 많이 감수한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을 제어하는 방법이 화산 폭발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콜라 회사인 펩시코의 CEO 인드라 누이가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가 2001년 펩시코 이사에 임명됐을 때 얘기다. 그녀가 한껏 기가 살아서 신나게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좋은 소식을 말하기 전에 우선 우유나 좀 사와라”라고 말 한 것이다. 그녀는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우유를 사왔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그 빌어먹을 왕관은 차고에나 놔두고 와!”(편집자 주: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자랑 좀 하고 다니지 말라는 뜻의 핀잔)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인드라 누이 대표가 이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현실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각인시켜 준다. 여기서 어머니는 인드라 누이가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책사였던 루이 하우가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명했듯 말이다.


윈스틴 처칠 전 영국 수상에게 이런 역할을 했던 사람은 그의 아내 클레멘타인이었다. “사랑하는 윈스틴, 당신의 태도가 변해서 이전만큼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라고 말할 용기가 있었던 클레멘타인 말이다. 클레멘타인은 이 편지를 히틀러가 파리에 입성했던 당일 썼다가 한번 찢었으나 결국 다시 써서 처칠에게 보냈다. 이 편지는 불만을 토로하기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남편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편지에 이렇게 적어 나갔다. 처칠이 회의에서 부하들을 너무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것 때문에 부하들이 어떤 의견도 제대로 얘기할 수 없었으며, 회의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지 못할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은밀히 얘기해 줬다고 말이다.


영국의 상원의원과 외무부 장관이었던 신경학자 데이비드 오웬은 1900년 이후 영국의 수상 및 미국 대통령들의 임무수행에 영향을 미쳤던 각종 병리현상을 연구한 저서 <질병과 권력>에서 루스벨트-하우의 이야기와 처칠-클레멘타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영국과 미국 지도자들 중에는 뇌졸증을 겪은 이(우드로 윌슨 미 전 대통령)도 있었고 약물 중독인 자(안소니 이든 영국 전 총리)도 있었다. 조울증이라 의심되는 이들(린든 존슨과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전 대통령)도 있었다. 하지만 오웬은 “이외에도 각종 다른 장애에 시달린 지도자가 최소한 4명이 있었고 의학계에서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웬과 그의 공동저자 조나단 데이비슨은 2009년 브레인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서 이 장애를 ‘오만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증후군을 “권력자, 특히 굉장히 성공적으로 특정 기간 동안 큰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린 지도자에게 생길 수 있는 장애”라 정의했다.


오만 증후군:당사자들은 무심하다

오만 증후군의 14가지 의학적 증상에는 남에 대한 노골적인 경멸, 매우 떨어지는 현실성, 침착하지 않거나 무모한 행동, 무능함의 표출 등이 있다.


오웬의 주장대로 의학계에서 오만 증후군을 곧 정식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 지난 5월 영국 왕립의학협회는 오웬이 오만 증후군의 연구와 예방을 위해 세운 단체 다이달루스 재단과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오웬은 자기 자신도 오만 증후군에 걸릴 소지가 충분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오웬에게 나는 “당신이 현실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중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이 뭐고,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권력자들이 참고할만한 전략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몇 가지 전략을 추천했다. 과거에 자신의 자만심을 깨뜨렸던 사건들을 떠올리는 것, 일반 서민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자기 지역 유권자들이 보낸 편지를 꾸준히 읽는 것 등이었다. 하지만 최근 오웬의 오만을 가장 많이 통제하는 것은 오만에 관한 그의 연구 자체가 아닌가 싶다.


오웬은 “기업들이 오만 증후군과 관련된 연구에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라고 투덜거렸다. 경영대학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 깔려있는 짜증은 그가 무기력함을 느낀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오웬이 미치는 좋은 영향과는 별개로 관련자 혹은 당사자들의 무관심 정도를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이사회와 임원회의에 만연한 이 오만 증후군이 조만간 치료법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