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 DIGITAL STORY2007. 9. 21. 10:08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챙랩을 비롯해 매트록스, 3DFX 등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했던 그래픽 칩셋 업체들이 사라져갔다. 2007년 현재 전문 그래픽 칩셋 제조사로 남아 있는 기업은 인텔과 AMD, 그리고 엔비디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텔과 AMD가 프로세서 분야에 좀더 특화된 기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전문 그래픽 칩셋 제조업체로는 엔비디아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스러져갔지만 독보적으로 살아남은, 한발 더 나아가 업계 선도적인 점유율과 기술력을 과시하는 기업이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또 CPU와 GPU의 통합 트렌드에 맞춰 그래픽 프로세서 전문 업체는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취임 1년을 맞은 엔비디아 이용덕 지사장을 만나봤다.



◇ 생태계 조성, 조직력 강화에 주력 = "참 바쁜 1년이었습니다."


이용덕 지사장은 지난 1년에 대해 숨돌릴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며 말문을 열었다. 엔비디아 지사장이 잠시 공석이었기에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고.


"크게 3가지에 주력했습니다. 첫번째로 내부 조직력 강화에 주안점을 뒀고요. 두번째로는 유통시장 체계화 및 질적 지원을 향상시키고자 했습니다. 세번째로는 타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조금 색달랐다. 해외에 본사를 둔 지사들은 대개 매출목표나 점유율, 인지도 등 구체적인 숫자가 목표인 경우가 많다. 엔비디아라면 다이렉트X10을 유일하게 지원했던 8000시리즈를 보유한 기업인 만큼 더욱 제품과 기술, 또 이와 관련된 기술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용덕 지사장은 조직 내 관계, 그리고 다른 회사와의 관계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었다.


"엔비디아코리아의 주업무는 본질적으로 지원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칩셋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회사들이 영업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게 목표인 것이죠."


살펴보면 사실 그렇다. 엔비디아는 GPU를 직접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기업이 아니다. 어쩌면 국내 대다수 그래픽카드 업체들과도 직접적인 거래 관계가 없다. 그들 또한 중국, 대만 등의 기업으로부터 그래픽 카드를 수입해 공급하는 유통 업체이기 때문.


"국내 유통사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최적의 영업 조건을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입사들의 마케팅 활동, 이벤트, 캠페인 등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가장 일차적인 공급 문제까지 해결해주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엔비디아 지사장 취임 이후 중국과 대만의 그래픽카드 제조사를 만나가면서 생태계 환경에 주력했다는 설명이다. 국내 시장에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그래픽카드 제조사를 만나고, 본사와 조율해 칩셋 공급 문제까지 다룬다는 것. 수입자들과 함께 신제품 출시 및 시장 분석에 대한 전략을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다.


"유통 채널과의 협업이 질적으로 개선됐다고 자부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당장 드러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8000시리즈 이후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사장은 향후 1년 2년이 지나면 그 효과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주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력도 요구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강력한 메인보드군이 출시되면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엔비디아의 시스템 구축 및 지원 업무는 유통 채널에 한정되지 않는다. 모바일 분야 등 주요 OEM 기업들과의 협업 관계는 물론, 게임 개발사들과의 제휴 업무도 포함돼 있다고.


"사실 우리나라의 판매량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코리아가 가진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삼성과 LG라는 거대 OEM 업체가 있고, 전세계적으로 퍼포먼스급, 마니아급 수요가 가장 많은 우리나라의 특징 때문입니다. 또 최상급 온라인 게임 개발사와 풍부한 게임콘텐츠, 프로게이머 등 관련 인프라가 발달한 나라이기도 하지요. 단일 최대의 캐드 수요 기업도 바로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그랬다. 매출에 급급하기보다는 내부 조직원의 응집력 강화와 다른 기업과의 협업에 주안을 두는 엔비디아의 특징은 이래서 나왔다. 그래서 엔비디아는 '관계성'에, 특히 '사람'에 집중했었나보다.


"오해도 사실 많이 삽니다. 기업들과의 협업이 주업무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소비자나 미디어와 직접적으로 접촉할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엔비디아코리아의 성격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강력한 3D에의 요구 지속된다" = 정상의 자리를 질주하는 엔비디아지만 일각에서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AMD가 내후년 선보일 예정인 퓨전 프로세서가 거론된다. 프로세서의 GPU 기능이 통합될 것이며 그에 따라 그래픽 칩셋 업체의 입지가 위태로와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단 개인적인 견해라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3D 기술의 발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합니다. 일례로 8800 시리즈에는 6억 8,000만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있습니다. 7000 시리즈에는 3억개가 안됐죠. 그만큼 좀더 나은 화질에 대한 요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지사장은 또 PC 뿐 아니라 모바일, 가전,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고화질 고품질의 영상 신호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재 기술 발전의 주요 트렌드이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는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엔비디아가 쌓아온 노하우도 상당합니다. 테슬러 테크놀로지가 대표적이죠. 가정에서도 수퍼컴퓨터급인 테라바이트 수준의 연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테슬러 기술을 이용해 GPU를 연산에 활용하면 100%가 아니라 100배가 빨라지는 사례도 있다면서, 이미 국내 유수 연구 기관과 접촉 작업을 시작했다고 알렸다.


"8800 GPU를 이용해 수퍼 컴퓨터급 연산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직은 접촉 단계지만 적용 사례가 나오면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봅니다."


항간의 예상처럼 CPU가 GPU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GPU가 CPU의 영역에 개입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는 또 메인보드 분야도 엔비디아의 새로운 영역이라고 거론했다. 수년간 AMD 프로세서에 적용해 그 성능과 안정서을 입증해온 메인보드용 칩셋 시장에 새롭게 기대하고 있다는 것.


"9월 중 인텔용 메인보드 칩셋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거의 매월 신제품이 준비돼 있습니다. 추후 아시겠지만 로드맵이 아주 화려하죠.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는 이 밖에도 스마트폰과 PMP, 동영상MP3 플레이어에 적용될 수 있는 듀얼코어 CPU 베이스 제품도 준비되고 있다면서 내년, 내후년이면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 "사명감과 역할에 대해 고민" = 엔비디아의 성장세는 실로 화려하다. 상장 이후 성장률로만 따지면 구글을 오히려 앞설 정도다. 고도 성장을 지속해온 엔비디아의 한국 지사에서 이 지사장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엔비디아코리아가, 그리고 제가 항상 생각하는게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역할이 그것입니다. 우선 생태계의 다른 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을 고민합니다. 제조사에게는 시스템과 노하우를 전달해주고 유통업계에는 마케팅을 협력하는 것이죠. 특히 IT 업계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수익은 필수적이지만, IT 업계 전체를 내다보며 사명감과 역할론을 고민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작게는 내부 직원들에게 발전이 토대가 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좋은 직장으로 만들려는 것이죠. 어쩌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정상의 자리를 질주하는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탁월한 기술과 제품도 중요하겠지만 함께 하는 이들과 함께 동반 성장하려는 철학이 그것이다. 어쩌면 경쟁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각으로는 결코 정상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고 또 유지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엔비디아 이용덕 지사장과의 만남이 신선했던 이유다.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