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질&시사2018. 7. 20. 16:23




200만이 나왔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고.


눈 부릅뜨고 있는 이들이 저리도 많은데 그럴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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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공수여단이 1980년 광주에서 벌인 일들



차량에서 하차하니 이미 다 시위대는 뿔뿔이 도망치고 누군가에 이 증오심을 풀어야겠는데 시위대는 없고 무두다 그 근처 관광호텔, 다방, 이발소 등등 건물을 수색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때 나는 관광호텔 뒤에 있는 미도장인가 하는 여관을 7~8명이서 수색하기 위해 갔더니 앞에 철문이 닫혀 있더군요.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안 열어주어 담을 타고 다른 사병이 넘어 들어가서 철문을 여니 몇몇 종업원이 우르르 나오더니 우리 집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더군요.


차라리 뒷문을 통해 피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 개새끼들이 겁대가리 없네"하면서 진압봉으로 구타를 시작했읍니다. 이 진압봉은 서두에 설명했듯이 너무나 단단하고 무게가 있어서 조금만 힘을 가해서 때리면 손목이나 팔목으로 막으면 팔이 부러지는 것이었읍니다. 4~5명의 종업원이 불과 2~3분 사이 하얀 와이셔츠에 나비 넥타이는 간 곳이 없이 시멘트 바닥 위에 나뒹구든 것이었읍니다. 모진 것이 사람의 목숨이었읍니다. 얼굴은 뭉개지고 피는 쏟아지고 군화발의 충격으로 인해서 뒷머리를 시멘트 벽에 그토록 강하게 부딪쳤지만 쓰러진 사람은 없더군요. 다만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얼굴로 변했지요.


한편 함께 수색하던 일부 병력 2~3명은 각 객실을 수색하여 젊은 사람은 무조건 밖으로 집합시키고 있었읍니다. 10여 명 이상의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 공포의 표정으로 2열종대로 집합하더군요. 그중 30대 중반의 사나이는 신혼여행 왔다고 사정을 하더군요. 저희하고는 대화가 필요없었읍니다. 무조건 무자비한 구타요, 연행 이외의 방법은 통하지가 않았읍니다. 신부가 나와서 사정사정하더군요. 눈물도 피도 없었읍니다.


……글로 적을 수 없도록 구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체육관 건물에 수용시킵니다. 앞뒤 문에는 4~5명씩 초병을 세우고, 안에서 4~5명이 구타를 또 한답니다. 그리고 잠시 대기하다가 상무대 31사단으로 보내집니다. 시위를 하였든 하지 않았든지 젊은 사람이라는 죄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한번 붙들리면 3~4차례 극심한 구타와 기합 등으로 인간의 한계를 지나버릴 정도로,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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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많아 학원가 거리라고도 불렸던 금남로 1가 YWCA 건물 옆길에서 두 여인이 걸어갔다. 공수부대원들은 그중 20대로 보이는 여자를 갑자기 진압봉으로 때렸다. 다른 여자가 항의하자 마찬가지로 진압봉으로 때렸다. 고시학원에서 나오던 학생들은 그 광경을 보고 '우~'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자 공수부대원들은 그 학생들을 두들겨팼다. 학원 안에 있던 학생들도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야유를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 학원 안으로 들어가서 조경숙(20)씨를 비롯한 수강생 50명을 진압봉과 개머리판으로 뚜들겨패고 최용범(20) 등 10명은 밖으로 끌고와서 밖에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뚜들겨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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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조정석씨(35·당시 대학 1년)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광주공원 근처를 걷던 조씨는 착검한 M16 자동 소총을 든 공수대원 2명으로부터 ‘이유 없는 추격’을 받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친 그가 겨우 몸을 숨긴 곳은 남의 집 창고 속 연탄더미 뒤였다. 거기까지 쫓아와 연탄더미를 칼로 일일이 찔러보던 공수대원은 퇴각 명령을 듣고서야 “재밌는 사냥감 하나 놓쳤다”고 말하며 철수했다. 광주에서 그 정도는 얘깃거리조차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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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김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는데 문을 닫고 보니 4명이 거기에 같이 갇힌 꼴이 되었지요. 그런데 아뿔사! 공수부대 놈들이 기어코 우리를 쫓아와 화장실 창문에 화염방사기를 대고 불을 뿜어내지 않겠어요. 순간 숨이 꽉 막혀 문을 열고 뛰쳐나갔어요.

최병옥, 화염방사기에 얼굴이 익어버린 사람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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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가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새끼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씨팔 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와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개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여학생의 교복 상의를 대검으로 찢고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그어 버렸다. 선혈이 가슴 아래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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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씨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사건 당시 고향인 진도로 가려고 아내와 딸을 데리고 시내를 벗어나려했다. 그러나 계엄군이 막았고 다시 북쪽에 있는 담양쪽을 나가려했으나 계엄군(3공수여단)이 막았다. 아내 김춘화씨는 울면서 보내달라고 사정했지만 거절했다. 계엄군은 '돌아가지 않으면 죽이겠다'총으로 위협까지했다. 김성수 씨는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딸을 차에 태웠고 돌아가려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차를 향해 계엄군은 무차별로 쏴댔다. 돌아가라 시켜서 돌아간건데 오히려 그 사람들을 무차별로 쏴댄 것이다. 김성수 씨는 의식은 있었지만 아내와 딸은 혼수상태였다.

아내인 김춘화씨는 뇌수술을 세번이나 받고 정신이상증세까지 걸렸다. 딸 내향(당시 5살) 씨는 하반신 마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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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에서 피사리하는 농부에게 총을 쏘아 중상을 입히고 저수지에서 목욕하는 중학교 1학년짜리를 오리 사냥하듯 쏘아죽였으며, 저수지에서 수영하다가 군인을 보고 손을 흔들던 아이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중략) 국민이 나라를 지키라고 세금을 내어 월급 주고 그 세금으로 사준 총으로 적이 아니라 제 국민을, 더구나 어른도 아니고 아이들까지 이토록 잔인무도하게 죽였다. 적진에서도 이럴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지휘관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그 책임자는 자결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지휘관은 없었다. 모두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다.





반드시,


지치지 말고, 지겨워하지도 말고, 적당히 봉합하지도 말아야 할 이유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