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질&시사2019. 4. 24. 18:18

 

# 부끄러운 일이 아닌 걸 알지만 부끄럽게 품어온,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고3이었던 1991년의 5월 어느날, 대한극장 앞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난생 처음으로 대규모 시위에 참여했더랬습니다.
처음의 의기양양도 잠시였습니다. 
정면으로 맞는 최루탄은 생각보다 독했으며, 도도했던 시위대 인파는 개미떼처럼 무력했습니다. 
쓰라린 눈에 들어온 백골단은 마치 골리앗처럼 거대했더랬습니다. 


저 또한 꽤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 흘린 피는 제 셔츠 왼편을 가득 적셨습니다. 
골목으로 골목으로 쫒겨다니다가 인파가 몰려 깔렸을 땐 이대로 죽는가 싶도록 무서웠습니다. 
김귀정 열사가 근처에서 돌아가셨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http://db.kdemocracy.or.kr/photo-archives/view/00755639



물대포에 맞아 추웠던 걸까요. 비가 조금 내려 젖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너무 무서워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겁니다. 
붙잡힌 이후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전경이 줄줄이 무릎 꿇은 인파 속에서 유독 저를 지목해 일어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던 시위 포스터를 제 손으로 떼어내라고 시켰습니다.
한 마디 반항도 못하고 저는 포스터를 떼어냈습니다. 


제가 그리 뼈대 굵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제 그릇이 그 정도라는 사실을,
이런 제가 정치나 사회 운동에 투신한다면, 그리던 목표에 오히려 방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때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유시민 작가를 저격한 뉴스를 읽었습니다. 

이를 통해 유시민 작가에게 '변절자'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움직임 또한 감지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왠지 유 작가는 굳이 반박하지 않을꺼 같습니다. 

100여 쪽의 진술서에 '나름의 진실'을 담을 때의 자괴감을 인정할 듯 합니다. 

 

 

한 때 동지라고 불렀던 이가,

자신 또한 고문으로 인해 허위자백을 했던 이가,

국가의 폭력으로 인한 진술을 비난했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28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나 봅니다.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