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검, 섹검, 딸검, 검새... 악행의 역사가 검찰 만큼 찬란한 조직도 드물지 싶습니다.
'정권을 유한하나 검찰은 무한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을리 없지요.
검찰의 안하무인 역사를 누군가 정리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품어봅니다.
드러나지 않은 악행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김성수 법무사의 기고문를 오다가다 읽어들 보시라고 펌합니다.
기고)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목격한 검찰의 민낯
지난 9월 24일,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택을 11시간 압수수색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온 국민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전개됐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광화문이 많은가, 서초동이 많은가 하는 숫자놀이로 본말을 흐리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무소불위 검찰권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그러나 검찰 권력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망은 저마다 품고 있을 것이다. '검찰 권력이란 것이 대명천지에 직속 상관에게도 저러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소시민은...'이라고 생각할 거다.
한국의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고 있다. 거기에 기소 여부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기소 독점에다 기소 편의까지 다 가졌다. 지구상에 거의 유일한 검찰이다.
어떤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추진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 검찰이 보인 무도함'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그 응어리에서 검찰 개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 그것도 선두에 섰다는 사람까지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는 인터뷰를 보기도 했다.
아니다. 필자는 문 대통령이 그 전부터 검찰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경험했고, 개혁 또한 지난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국을 내세운 것이라고 생각한다(*필자는 몇 년 전, 고영주씨('부림사건'의 공판검사)가 영화 속 노무현 변호사의 역할은 거짓이라고 인터뷰한 기사를 읽고, 그 현장 목격자로서 '고영주씨 말이 거짓'이라는 반박글을 쓴 적이 있다).
명백했던 동의대 입시 부정 사건, 검찰이 내린 결론
1989년 '5.3 동의대 사태'는 경찰과 학생이 맞부딪친 사건이었다. 이 일로 경찰관 7명이 숨지고 10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또, 학생 76명이 구속되는 참혹한 사건이었다. 이 동의대 사태의 원인은 '동의대 입시 부정 사건'이다. 입시 부정 사건에서 정상적인 사법 시스템만 가동됐다면, 뼈아픈 희생을 막을 수도 있었다.
동의대 입시 부정 사건은 1989년 동의대 입시 당시 김창호 교수가 '비표 표시된 수험생의 답안지에 정답을 써넣어 채점해 달라'는 동료 교수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시작됐다. 김 교수는 학교 측에 '입시 부정을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이를 외면했다. 김 교수와 젊은 교수들, 그리고 총학생회 측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검찰에 입시 부정을 고발했다. 이 와중에 5.3 동의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검찰은 사회적으로 이목이 쏠리던 이 고발 사건을 수사했다. 검찰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7000매를 정밀 조사한 결과, 비밀 표시된 답안지 27매를 발견했지만 해당 답안지는 0점 처리되었다. 채점 위원들도 8명이 함께 채점했기에 부정이 저질러질 수 없었다.'
검찰은 결국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처분 했다. 이 '검찰 결정'을 업고 학교 측은 '허위 주장으로 학교 명예를 추락시켰다'며 김 교수 등을 해임했다. 입시 부정을 제의 받은 본인의 생생한 진술이 있었고, 또 고발 내용대로 비표가 발견되었음에도 검찰은 불기소한 것이다.
해임된 김 교수 등은 흑을 백이라 강변하는 이 거대조직 앞에서 맞서싸우기 쉽지 않았다. 정의나 내부고발의 의로움, 용기는 그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수식어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법원에 '해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여 입시 부정을 밝히는 또 다른 길을 찾았다.
이 때 김 교수 측 변호사가 문재인 당시 변호사였고, 필자는 참여사무관이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동의대에 직접 가서 문제의 답안지를 직접 보자'고 검증 신청을 했다.
이러한 경우 이미 검찰에서 불기소결정이 났다면 '형사기록송부촉탁'을 통해 송부되어온 기록을 검토하는 것에 그친다. 일부러 답안지 원본을 살펴보자는 것은 '유별난 신청'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 또한 '유별난 채택'이었다.
재판장과 문재인 변호사, 필자 셋이서 동의대로 가서 보관 중인 해당 학과 답안지 전체를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답안지에서 문제의 비표 표시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명명백백해졌다. 중고등학교 모의고사 시험지도 아닌 대학 입시 답안지 아닌가.
다른 과 수험지에서는 단 하나의 비표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오직 김 교수가 고발한 해당 학과 답안지에서만 또렷하게 비표를 한 답안지가 나온 것이다. 해당 답안지들을 모으면서 재판장, 문재인 변호사, 필자 모두 눈길만 마주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이 필요 없었다.
필자는 '부정의 존재'를 제3자라도 쉽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검증조서를 작성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해당 답안지들도 복사하여 검증 조서 말미에 첨부했다. 재판장은 '입시 부정이 존재함'을 전제로 '해임은 무효'라고 김 교수 측 손을 들어주었다.
'보복'과 '조국 수호'? 개혁 요구를 그렇게 치부하지 마라
똑같은 사건을 놓고 검찰은 '입시 부정의 부존재'를 근거로 불기소하고, 법원은 '입시 부정의 존재'를 근거로 해임 결정 무효를 선고한 것이다. 극히 이례적인 충돌이었다. 그러나 동의대는 민사 판결이 있었음에도 재임용 심사에서 이들을 탈락시켜 버렸다.
검찰의 불기소결정은 강고했고, 민사 판결조차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팽개쳐진 김교수 등이 호소할 곳은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김 교수 등은 민주화 물결을 타고 청와대에 호소했다. 청와대는 검찰에 재수사 지시를 내렸다. 감시와 견제가 작동되는 재수사에서 동의대 입시 부정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단 한 번의 답안지 확인으로 불법을 밝힐 수 있음에도 검찰은 기소 독점, 기소 편의에 편승하여 진실을 외면한 것이다.
재수사결과 5년 만에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뒤집어졌다. 1994년 3월, 입시부정을 획책했던 교수들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해당 검사들은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형사적으로도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끝끝내 복직을 외면했던 동의대는 무려 17년 만에 세 교수의 복직을 허락했다. 검찰의 부정의(不正義)가 낳은 비정상(非正常)의 정상(正常) 찾기에 이렇게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이러고도 검찰 개혁 요구를 '보복'이니 '조국 수호' 정도로 치부하며 검찰을 엄호할 것인가. 이제 검찰 개혁이 거스릴 수 없는 도도한 물결임은 명백하다. 그동안 불의 앞에 타협과 순종, 그리고 포기로 일관했던 비겁을 성찰하면서 검찰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한다.
동시에,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을 짚어야 한다. 검경의 권력 배분보다 더 중요한 것, '그들만의 리그로 흘러서는 안 된다'. 두 권력 기관으로부터 인권과 기본권이 짓눌리지 않는, 사법 정의가 도도히 흐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들은 결코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이연주 전 검사의 페북 글.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내가 검사로 임관한지 5개월쯤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17세의 가출소녀가 절도죄로 구속된 사건이 나에게 배당되었다. 그 전날 당직검사가 구속시킨 모양이었는데, 그 소녀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였고 게다가 임신한 상태였다.
노숙을 하는 그 아이는 따뜻한 밥 한끼와 잠자리를 준다는 약속이면 누구든지 따라가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글로 배웠고, 피의자에 대한 태도로 배운 것은 사법연수원 검찰실무 교재의 여러 결정문 예에 나와 있는 “피의자의 장래를 엄히 훈계하고”가 다였다. 내가 어리석다지만,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는 그 아이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훈계를 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왜 집을 나왔는지, 지금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그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이상 그 아이의 가망없는 상황을 내 걱정의 리스트에 더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였다.
글로 배우지 못한 상황은 그 외에도 많았다.
검사장은 자신의 관사 주소를 적어주며 나에게 그 곳으로 퇴근 후 찾아오라고 하거나 단둘이 등산을 가자고 했고, 일요일날 호텔 일식당에서 식사를 하자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차장 검사는 자신의 방에 불러서 특정사건의 기소유예를 지시하는 자리에서 그 사건의 청탁을 하는 스폰서와 전화통화를 했다. “네 제가 지금 불러서 잘 시켜두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라고.
부장검사는 점심식사 자리에서 한때 나이트클럽의 사장이 소개시켜준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함께 통영여행을 간 이야기를 했다. 지역유지로부터 호화요트를 빌려서 다녀온 여행이라고 했다. 그 요트 위에서 자신이 오일을 발라주던 아가씨의 탄력있고 날씬한 몸과 매끄러운 피부에 대해서 상세히도 묘사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부장검사는 또 내가 구속하라고 지시를 내린 사건의 기록이 부장실로 올라갔을 때 내가 서명날인한 지휘명령서 부분을 없애고 자신이 만든 “불구속” 지시로 바꾸었다. 그런 다음 나를 전화로 불러 서명, 날인을 하고 가라고 지시했다. 그 사건은 고위공직자의 동생이 저지른 음주뺑소니 사건이었고, 음주운전적발이 3회째였다. 삼진아웃제에 따라 음주운전만으로도 구속되는 게 원칙이었는데, 거기에 더하여 인명사고 후 도주까지 한 피의자에 대하여 부장은 불구속결정을 했다.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는 모두 타인을 처벌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법률의 적용과 집행은 외부를 향한 것이지, 그들은 거기에서 제외되고 법을 벗어나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우울감에 시달렸고 출근하는 것이 두려웠다. 현실을 생각하고 느끼면 혼란스럽고 불안해져 마치 내가 딛고 있던 땅이 조금씩 침식되어 깎여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지 않고 느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나는 뿌리로부터 물과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는 고목처럼 안으로부터 메말라갔고 현실을 살아가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마치 내 영혼이 공중 어딘가를 부유하며 허깨비로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검찰을 떠났고 시간은 흘러 김홍영 검사가 자살을 했다. 나보다 몇배는 더 고통스럽고 더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을 것을 짐작하고 가슴이 아렸다. 위의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는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나에게는 세상을 욕할 자격이 없었다. 나에게 침묵의 죄를 물어야 할 뿐.
그런데 나에게 더 깊은 절망은 그 후에 찾아왔다. 공익의 개념이라고는 전혀 없는 욕망덩어리의 천박한 권력자에게 부역한 혐의를 받고 있던 검찰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이다.
검사들은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검사가 쓴, 베스트셀러가 된 어느 책에서 그 검사는 “내가 검찰에 들어온 뒤 이 조직은 늘 추문과 사고에 휩싸였다. 그때마다 뼈를 깎는 각오로 일신하겠다는 발표를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깎을 뼈도 없는 연체동물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늘 죄인처럼 지냈지만, 추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부분의 검사들이 왜 싸잡아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적었다. 저 검사는 침묵한 죄와 행동하지 않은 죄를 각성하지 못하고 저렇게 가볍게 보는구나 싶었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법원에 접수시킨 압수수색영장을 변호사의 영장기각 청탁을 받고 법원으로부터 회수하고서는 보관본의 차장 날인을 수정액으로 지운 다음 결재 중이었는데 직원이 실수로 접수시켰다는 거짓말을 하고, 국회의원의 채용청탁비리를 봐주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죄의 무게를 다는 그들의 저울은 고장났다. 17세의 가출소녀를 구속하고 자신의 스폰서와 고위공직자의 동생은 봐주던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들에게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처벌하게 하는 게 옳은지를 아프게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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