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질&시사2018. 9. 12. 18:09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실어증 병동에서 와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텔레비전에서는 언제 봐도 매력적인 배우 출신의 대통령이 능숙한 말솜씨에 성우 뺨치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멋들어지게 연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환자들은 파안대소를 했다. 


그러나 전원이 그렇게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혹스런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저 잠자코 있는 사람도 있었고 개중에는 의아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한두 사람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통령은 늘 그렇듯이 감동적으로 연설했다.


환자들은 대관절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대통령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걸까,아니면 알아듣지 못한 걸까?




흥미롭게 읽었던 책의 한 구절입니다. 좀더 정확히는 올리버 색스라는 사림이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중 '대통령의 연설'이라는 챕터지요. 


저자가 아마 심리학자나 그 비슷한 전문가였는데요. 지능은 높지만 극심한 수용성 실어, 혹은 전실어(全失語)에 걸려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된 환자 병동에서 일어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들 환자의 특징은 말을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하는 말을 거의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나 친척,간호사 등 그들을 잘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환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곤 합니다. 


이들이 이해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비언어적 요소들입니다. 대표적으로 표정이 있지요. 오히려 보통사람보다 더욱 뛰어난 힘을 갖기조차 한다고 합니다. 올리버 색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실어증 환자들이 그들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잃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대신에 무언가가 나타나고그것이 점점 힘을 늘려 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적어도 감정을 넣어 한 말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조차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실어증 환자를 접하는 사람들이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이 나고 만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인가 아닌가를 이해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언어는 상실했지만 감수성이 특히 뛰어난 그들은 찡그린 얼굴. 꾸민 표정, 지나친 몸짓,특히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박자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따라서 실어증 환자들은 언어에 속지 않으며 현란하고 괴상한(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말장난과 거짓과 불성실올 간파하고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대통령의 연설올 들으면서 폭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대통령의 연설' 챕터 마지막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 연설의 파라독스였다. 우리 건강한 사람들은 마옴 깊은 곳 어딘가에 속고 싶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속아넘어간다(인간은 속이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속는다). 교묘한 말솜씨나 성우처럼 멋진 목소리에도 속아넘어가지 않는 것은 뇌에 장애를 가진 사람둘뿐이었던 것이다.







# 길게 썼다가 다 지웠습니다. 아래 글만 간략히 남겨봅니다. 



모든 사람이 '진실을 구분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힘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 또는 상황, 이해관계에 따라 그 '진실을 향한 눈'이 어두워지거나 밝아질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이 일화를 좋아하는 이유는요. 





노무현에 대한 초기의 열광과 뒤늦은 열광


세월호 사건(특히 박근혜의 눈물 대국민 담화)에 대해 엇갈리는 반응, 


이명박를 찍은 사람들의 태도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에 대한 평가들


진보 진영 일각을 이루는 이들의 태도


그리고 '민심이 천심'인 이유


등에 대해 흥미진진한 해석의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언제 자신이 가진 '진실에의 감수성'을 간과하고 오염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걸까요?


참고삼아 함께 읽어볼 만한 포스트 하나 덧붙여봅니다. 



-> 좌파가 조던 피터슨을 두려워하는 이유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