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소소2016. 12. 23. 13:22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딸램은 무서움은 꽤 탑니다. 나서는 것도 주저하죠. 오기나 저항 정신이 그리 선명해보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키우기 편했던 면도 있지만,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딸아이라 그런가보다.


성차별적인 소리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곤 했더랬습니다.


그랬던 제가 딸램에게 감동한 이야기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6학년 2학기 한참 가을께 담임 선생님이 편찮은 바람에 한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임시로 부임했습니다.


임시 담임에다 정교사도 아닌 할머니 선생님. 머리가 굵어가는 아이들 눈에는 좀 만만해보였나봅니다. (기존 선생님에 대한 의리가 작용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선생님께 막 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대놓고 말대꾸하고 선생님이 뒤돌아서면 주먹엿을 날리고, 지시에 따르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학기였습니다. 그럭저럭 시간을 때워갔지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업 중 알콜이나 담배가 태아에게 몹시 해롭다는 영상이 있었는데, 한 까불이 남자애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겁니다. 


"XX 엄마가 XX 임신했을 때 그랬나?" XX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급우입니다.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고 그 애를 비롯해 그런 분위기를 만든 반 아이 전체를 나무랬답니다. 


애들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집단적으로 반항했습니다. '이건 폭력이에요.' '경찰에 신고할 꺼에요.'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고 반항하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습니다. 


며칠이 지나 통제가 불가능할 수준까지 심화됐습니다. 결국 교장, 교감 선생님이 개입했습니다. 아이들과 자유토론을 했다더군요. 


아이들은 입을 모아 선생님을 성토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주도하는 가운데, 나머지 애들이 군중 속에 숨어 선생님을 비토했지 싶습니다. 서로에게 힘입어 목소리가 점차 고조됐을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건 아니다' 싶었던 딸아이가 손을 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답니다.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이 더 문제였다고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행태를 보였었는지도 말했겠죠. 


"그러면 너는 선생님을 이해하는 거니?"


교감 선생님의 질문에 딸냄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선생님을 이해하는게 아니라 다른 애들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반 아이들이 심했어요."


아이들은 깜짝 놀란 눈빛으로, 혹은 배신자를 보는 눈빛으로 딸램을 봤다더군요. 


"모두가 선생님 안티인 것은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전할 말을 묻는 교감 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에 딸램은 이렇게 덧붙였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내에게 딸냄의 심리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근처 집에서 인테리어를 하는지 집이 덜덜 울렸다더군요.


딸냄이 아침 먹다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 반 애들이 쳐들어왔나봐요."


그렇습니다. 졸업도 하겠다, 이사도 가겠다, 다시 볼 일 없겠다 싶어 질러놓긴 했는데, 나름 몹시도 무서웠던 겁니다. 






정말 오랜만에 딸냄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품에 안고 토닥이면서 말했습니다. 


낳기를 잘했다고, 이렇게 잘 컸다고, 비싼 돈(^^) 들여가며 키운 보람이 있다고 말입니다. 


마음 아픈 누군가를 배려해서 그렇게 용기를 낸 건 정말이지 훌륭했다고 말했지 싶습니다. 



"저 예쁘죠?"


딸램이 묻길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뇨. 아로는 멋있어요."






숨죽이던 콘크리트 지지층의 꿈틀임을 바라보며 곱씹어보는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을 담은 지난 포스트를 연결해봅니다. 


-> 인간은 가해자 속에서 생겨난다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