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인 바로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동창 밴드에서 못볼 글을 하나 봤습니다.
'김지하의 세월호 가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는 글이었습니다. (링크 걸기 참 싫네요... )
작년에 얼핏 봤던 글이었지 싶은데, 아직까지 떠돌고 있더군요.
바쁜 업무에 지끈거리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글을 쓰고, 전파하는 건 도데체 어떤 마음에서인 걸까요?
어떻게 기성세대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걸까요?
그 뻔뻔함과 완악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조금이나마 통찰을 줬던 글 일부를 공유합니다. 전체글은 링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 읽기] 명복을 빌지 마라 / 후지이 다케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6468.html
4월 초에 처음으로 단원고를 찾아갔다. 1년이 지나서야 찾아간 안산 고잔동의 봄날은 1년 전에도 그랬을 것처럼 조용하고 따스했다. 꽃들과 메시지들만 가득한 2학년 교실을 둘러보고 유가족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동하다가 천변에 걸린 노란 현수막에 적힌 한 글귀가 감상에 빠졌던 나의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함께 죽였고 함께 구하지 않았으므로 외면하고 망각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작년 4월16일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하던 ‘잊지 않겠다’는 맹세는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겐 그들을 망각할 권리 자체가 없다.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구하지 않은 이 사회는 지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러가고, 우리는 이 사회가 유지되도록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살인자의 대오 속에 있다.
마치 ‘피해자’를 폄하하고 ‘가해자’를 평가하는 듯하지만,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세월호 유가족, 특히 부모의 이야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이 ‘가해자로서의 승인’이다. 유가족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깨닫고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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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자신 또한 가해자임을 깨달은 이들이,
더 이상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힘과 용기를 쥐어짜는 행동에 대해,
거리낌없이 모욕하는 사람들.
'이제 지겹다'고 투덜대는 가학적 '피해자 집단'이 37.7%에 달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산다는 건 무척이나 끔찍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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