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질&시사2015. 4. 16. 14:06



1주기인 바로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동창 밴드에서 못볼 글을 하나 봤습니다.


'김지하의 세월호 가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라는 글이었습니다. (링크 걸기 참 싫네요... )


작년에 얼핏 봤던 글이었지 싶은데, 아직까지 떠돌고 있더군요. 





바쁜 업무에 지끈거리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글을 쓰고, 전파하는 건 도데체 어떤 마음에서인 걸까요?

어떻게 기성세대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걸까요?

그 뻔뻔함과 완악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조금이나마 통찰을 줬던 글 일부를 공유합니다. 전체글은 링크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 읽기] 명복을 빌지 마라 / 후지이 다케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6468.html


4월 초에 처음으로 단원고를 찾아갔다. 1년이 지나서야 찾아간 안산 고잔동의 봄날은 1년 전에도 그랬을 것처럼 조용하고 따스했다. 꽃들과 메시지들만 가득한 2학년 교실을 둘러보고 유가족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동하다가 천변에 걸린 노란 현수막에 적힌 한 글귀가 감상에 빠졌던 나의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다. 


“함께 죽였고 함께 구하지 않았으므로 외면하고 망각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작년 4월16일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하던 ‘잊지 않겠다’는 맹세는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겐 그들을 망각할 권리 자체가 없다. 그들을 죽이고 그들을 구하지 않은 이 사회는 지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러가고, 우리는 이 사회가 유지되도록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살인자의 대오 속에 있다.


‘가해자’라는 위치에 대해 고민할 때 항상 생각나는 글이 있다. 1939년에 징병되어 만주에서 근무하다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8년을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보낸 이시하라 요시로(石原吉郞)라는 시인의 글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 있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만 했던 수용소 경험에 관해 쓴 ‘비관주의자의 용기’라는 글에서 그는 먼저 ‘가해’와 ‘피해’라는 구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마도 가해와 피해가 맞서는 자리에서는 피해자는 ‘집단으로서의 존재’일 뿐이다. 피해에 있어 끝내 자립하지 않는 자들의 연대. 연대를 통해 피해를 평균화하려는 충동. 피해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가해적 발상. 집단이기에 피해자는 잠재적으로 공격적이며 가해적일 것이다.” 

그런 한편 ‘가해자’에 대해서는 “사람이 가해의 자리에 설 때, 그는 항상 소외와 고독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마치 ‘피해자’를 폄하하고 ‘가해자’를 평가하는 듯하지만,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한 가해자가 가해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탈락한다. 그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비인간적인 대치 속에서 비로소 한 인간이 생겨난다. ‘인간’은 항상 가해자 속에서 생겨난다. 피해자 속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를 최종적으로 가해자로 승인하는 장소는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으로서, 하나의 위기로서 인식하기 시작하는 장소이다.” 

수용소의 극한 상황을 살아낸 이 시인은, “가해와 피해의 유동 속에서 확고한 가해자를 자신에게 발견해 충격을 받고 오직 혼자서 집단을 떠나가는 그 ‘뒷모습’”에서 ‘인간’을 본다.

세월호 유가족, 특히 부모의 이야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이 ‘가해자로서의 승인’이다. 유가족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깨닫고 자신을 가해자로 만든 위치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해자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제 지겹다’고 투덜대는 이들이다.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않기 위해 집단 속으로 몸을 숨기며 잊히기만을 기다린다. 4월16일이 되면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희생자의 명복을 빌겠지만, 이 명복을 빈다는 행위는 희생자들을 저승으로 내보내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떨쳐버리려는 몸짓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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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P.S.



자신 또한 가해자임을 깨달은 이들이,


더 이상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힘과 용기를 쥐어짜는 행동에 대해,


거리낌없이 모욕하는 사람들.


'이제 지겹다'고 투덜대는 가학적 '피해자 집단'이 37.7%에 달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산다는 건 무척이나 끔찍한 일입니다.








Posted by Yes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