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희석된대요 저는 기껏해야 중상위권이에요 "
제 눈에는 횡재다 싶을 정도로 총명한 딸내미인데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좀 지나치게 낮아보였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 엄마아빠보다는 좋은 대학 가야한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너는 대단히 똑똑하다고, 아빠에겐 없는 노력 능력까지 갖췄다고,
거듭거듭 말해도 반박하기만 했더랬습니다.
엄마 아빠는 오늘날의 교육 현실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고 타박하기도 했더랬죠.
여튼 자칭 '교내 최악의 문제아'인 딸내미가 최근 고입 입시에 '성공'했습니다.
고양국제고(GGHS) 10기 생으로 최종 합격한 겁니다.
간절히 원했던 결과를 마침내 이뤄낸 딸내미가 무척 기특합니다.
사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국제고 입시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성적은 엔간하면 되는데요.
변별력이 그리 있어보이지 않는 단순한 면접, 그리고 자기소개서가 당락을 좌우합니다.
올인하다시피 매달리는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스트레스를 일으킬만 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4,000번 이상 다듬고, 이를 총 20여 가지 버전으로 관리하더군요.
1,500자 이내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1,499자로 맞추는, 어이없는 집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쑥쓰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친척들이 올 때면 자청해서 면접 연습을 부탁했습니다.
동동거리며 확보한 완벽한 출결은 물론, 오로지 스펙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동아리를 운영했고요.
눈이 반짝거릴 정도로 좋아했던 화장하기와 화장품 사기, 각종 게임 모두 자발적으로 끊었습니다.
생일 선물로 사준 스마트폰을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딸내미가 개발한 예상질문 리스트는, 중학교 입시 담당 선생님이 후배들을 위해 기증하도록 했답니다.
생뚱맞게 왠 딸내미 자랑이냐면요.
자기에게는 공명심이 있답니다.
베란다에 합격 플래카드 걸어주면 안 되겠냐네요.
안 된다고 하니 차량 스티커를 커스텀 제작해서 붙여달랍니다.
그 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빠 블로그에 글을 꼭 써달랍니다.
그래서 써봅니다.
딸내미에게는 '플래카드'인 포스트이며, 저에게는 저보다 나은 이에게 보내는 'respect'입니다.
"이렇게 된 거 대학교까지 1지망으로 가봐야겠어요."
"자기소개서 '인성영역' 작성에 지대한 공을 세운"
"그래서 평생 밥값을 이미 다 한"
울 막둥이의 빼꼼 사진으로 포스트 마무리해봅니다.
P.S. 합격 대 불합격을 두고 5만원 대 500만원 빵이었던 내기는 이렇게 제가 이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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