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학년 1학기 개학을 앞둔 시점에 연습장 한 구석에 끄적거린 메모부터 시작해봅니다.
다음은,
2022년 7월 5일. 그러니까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쓴 글 2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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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국제고 2-1학기 내신 1.44, 그 후 1 년(1)
* 우울과 관련된 강한 묘사가 있으니 관련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은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딱 1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레전드 갓생(…) 2학년 1학기를 보내고 난 후,
후기를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딱 사흘이 지났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1등급이 7과목 중 5개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당시 트랙을 돌던 순간입니다.
거의 춤추다시피 하며 트랙을 돌다가, 문득 ‘2학기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은...
중학교 시절 고양국제고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습니다.
공포가 싸하게 밀려오며 심장이 폭삭 내려앉는 느낌.
일단 오늘을 즐기자, 하고 애써 넘어갔습니다.
여름방학 때까지만 해도 무난하게 넘겼습니다.
최저 공부시간 12시간, 다시 말하지만 이게 최저였습니다.
예비고2 겨울방학에 비해 집중력이 살짝 떨어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비슷하게 노력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2학년 1학기의 저 자신과의 지긋지긋한 비교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저는 2학년 1학기의 저를 이기고 싶었습니다.
5학기 상승곡선, 정말 무리한 욕심인 걸 알았지만 이루고 싶었습니다.
2학기 개학날이었습니다.
저는 제 삶이 갑자기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 아직도 참 희한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인생이 급속히 무너졌습니다.
그때부터 일거수일투족이 2학년 1학기와 뚜렷하게 비교되었습니다.
2학년 1학기 때는 아침마다 20분 동안 스페인어 녹음파일 들었는데, 왜 지금은 15분 만에 음악 들어?
2학년 1학기 때는 애조에 이런 딴생각을 하지도 않았어.
2학년 1학기 때는 이렇게 피곤해하지 않았어, 너가 상승곡선을 유지하기 싫구나?
2학년 1학기 때는 홈커밍데이 하루만 쉬고 토요일부터 공부했어, 왜 지금은 일요일까지 상태가 이 모양이야?
2학년 1학기 때는 중간고사 n일 전이면 이렇게 했고, m일 전이면 이렇게 했고...
2학년 1학기 때는 수행 잘 봤는데, 이번에 벌써 3번이나 실수했네? 6단위인데 1등급 못 받으면 어쩌게?
2학년 1학기 때는, 2학년 1학기 때는, 2학년 1학기 때는....
차라리 제 노력이 2학년 1학기와 비교되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닐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2학년 1학기 때는 중간기말 다 보는 과목이 4개였는데, 이번에는 2개밖에 없네? 지필 비중 적으면 나한테 불리한데?
2학년 1학기 때는 중간고사만 보는 과목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스페인어...중간고사만 보는 과목은 1등급 못 받는데?
2학년 1학기 때는 인원수 제일 적은 과목이 84명이었는데, 지금은 48명이네...이 과목 어떡하지?
2학년 1학기 때는 발표 일정이 아다리가 잘 맞았는데, 지금은 왜 스케줄이 이렇지?
2학년 1학기 때는 시험범위가 많아서 오히려 좋았는데, 지금은 범위가 지나치게 적어서 100점 아니면 큰일나네?
그리고…
2학년 1학기 때는 격주등교였는데, 지금은 전면등교야?
1.44의 부담감과 전면등교는 저를 벼랑 끝까지 몰아갔습니다.
애초에 막대한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전면등교 하에서, 2학년 1학기 시절과 같은 양의 노력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점심과 저녁 두 끼를 굶는 것이 그 단적인 예시였고요.
격주등교 하에서는 가능한 수준의 노력이,
전면등교에서는 지속이 불가능할 만큼 비인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격주등교 시절보다 오히려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전면등교를 하니 다른 학생들의 공부량이 늘어난 게 보였거든요.
저는 전교 1등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그건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지위잖아요.
2학년 2학기는 매 순간순간이 지옥이었습니다.
조금만 삐끗해도 하강곡선인 상황이니,
아주 가느다란 실 위에서 뛰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었는데,
고양국제고 면접장에 들어서기 10조 전 제 심장도 그것보다는 느리게 뛰었을 겁니다.
수행평가에서는 어이없는 실수를 연발했고,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으나 공부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쏟아져서 울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경계가 모호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해도 삶의 질이 나빠진다는 게 정말 희망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분명 노력을 해서 국제고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기다린 것은 가혹한 내신 경쟁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노력해서 2학년 1학기 내신에서 1.44를 받았습니다. 1학년 내신도 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막중한 부담감과 전면등교가 저를 짓눌렀습니다.
한때는 3시 50분에 집에 가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국제고에 진학한 이후 저는 5일에 한 번 집에 갔습니다.
A만 받아도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4%,1등급이 디폴트 목표가 되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격주등교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21 년 10월 이후 제 성적과 컨디션을 책임지던 온클은 기약이 없어졌으며, 전면등교를 해야 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죽고 싶었습니다.
수행평가에서 실수를 했을 때마다, 그날 야자에서 공부 달성률이 엉망일 때마다 끊임없이 극단적 시도를 했던 거 같습니다. 발판으로 쓸 캐리어를 끌고 기숙사 9증까지 올라가거나, 스타킹을 묶을 곳을 찾거나 하는...
9증은 애매한 높이였고 스타킹이나 끈을 묶을 만한, 제 키보다 높은 곳은 찾지 못했습니다.
아파트는 15증 높이니, 금요일에 집에 가면 거기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집에 가면 너무 피곤해서 그냥 그대로 잤습니다.
토요일하고 일요일에는...죽을 때 죽더라도 학원 선생님은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 들으면서 많이 웃어드리고 싶었는데 눈물을 참는 것도 힘들어서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 했습니다.
선생님이 걱정하시면 자괴감이 들고 슬펐어요.
계속 그런 사이클을 반복했습니다.
사실 이 때 병원에 가든가 했어야 하지만,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하셨어요 ㅋㅋㅋㅋ 그리고 저도 그 시간에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고요. ???, 2학년 1학기 때는 정신과에 가느라 시간을 버리지 않았어! 그 시간에 공부했지!
그래서 내신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음...코로나가 심각한 관계로 2학기 중간고사 때까지는 거의 격주등교를 했어요. 추석도 있었고요.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전부 배제하고 순수 중간고사 석차로만 계산하면, 동석차 미포함 1.0이었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는 얄짤없이 전면등교를 했습니다. 중간에 수능 방역을 위한 1주 반의 온클이 있었어요. 그 온클이 아 니었다면 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기말고사는 100점이 없었습니다.
쉬운 과목도 두 개씩 나갔더라고요.
절대평가 과목 환산 포함 3.4, 절대평가 과목 환산 미포함 2.7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섯 과목 중 다섯 과목을 문 닫았습니다. 다섯 과목이 각각 커트라인 뒤에서 1등, 뒤에서 2등, 뒤에서 3등, 뒤에 서 4등, 뒤에서 5등이었어요(…)
저는 등급 운빨과 격주등교 중간고사 1.0 덕에 간신히 1 점대 극후반을 사수했습니다. 4등급 있아도 1점대 나와요 ㅋㅋㅋ 한 등급만 낮았더라도 2점대였습니다.
1점대 후반은 훌륭한 내신입니다.
특목고에서 1점대=>1점대는 하강곡선으로 안 친다고 모두가 저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그 1점대 후반의 내신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각각 분류하여 파해쳐 보면,
제 내신이 모두 온클빨이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 주는 성적 그래프였습니다.
1.0에서 3.4… 이건 하강곡선이죠. 아주 명확하고 극명하며 꼴 보기 싫은 하강곡선.
2년 가까이 불안해했던, 그러면서도 아니길 바랬던 진실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
제 인생 최악의 기억을 꼽자면 그 순간입니다.
저는 기말고사 점수와 종내신을 확인한 후 40시간 동안의 기억이 없습니다.
하루 넘게 물을 포함한 음식을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살면서 처음으로 방을 꼬박 샜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열심히 했는데 망하는 것도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래도 천운으로 1점대 극후반을 받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요?
생으로 전면등교를 하는 3학년 1학기가 남아 있었기에 그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3학년 1학기에 등급 문을 모조리 닫을 거라고 당연히 장담할 수 없고요.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3학년 1학기 후기는 '고양국제고 2-1학기 내신 1.44, 그 후 1 년(2)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3 학년 1학기는 마지막이라는 단어 하나 덕분에, 2학년 2학기처럼 암울함의 막장을 달리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ㅋㅋ 성적은 2학년 2학기보다 암울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격주등교 중간고사 1.0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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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국제고 2-1학기 내신 1.44, 그 후 1 년(2)
저는 처음 수시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3학년 1학기가 무서웠습니다.
사실상 그 학기 하나로 수시의 당락이 결정되는 것 같았어요.
2학년 2학기 때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였던 것도,
내신을 잘 받아서 3학년 1학기의 연계 과목을 행복하게 공부하려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2학년 2학기 때 수2를 망치면, 3학년 1학기 때 확통을 웃으면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니라서요.
그리고 3학년 1학기의 부담감은, 2학년 2학기가 그렇게 생지옥이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앞선 글에서 보셨듯이 저는 2학년 2학기를 완전히 망쳤죠.
성적 유지 면에서도 실패했고, 체력 보존 및 멘탈 관리 면에서도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시 공부하려 했습니다.
만약 남은 학기가 3학년 1학기가 아닌 다른 학기였다면, 저는 공부를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3학년 1학기잖아요. 수시러의 명운이 달린 3학년 1학기. 마지막 학기.
그런데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에 12시간을 자도 수면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7시 기상? 억지로 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면 그날 하루종일 졸았습니다.
죽도록 피곤하고, 졸리고, 몸이 축 늘어지며 무기력했습니다.
나중에 웹툰을 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본인이 처한 현실이 너무 가혹하고 쓰리면 뇌가 그런 식으로 방어기제를 작동한다고 하네요. 일종의 살기 위한 현실도피죠 뭐...
1월까지는 어떻게 버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2학년 때의 방학들과 비교해 공부량이 현저히 적다는 것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실은 안 그래도 없는 제 의욕을 더욱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2월은 공부를 거의 놓았던 거 같네요.
개학 전날에는 누가 심장을 짓누르는 것 같아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렀고 잠은 계속해서 쏟아졌습니다.
밥도 거의 못 먹었어요.
3학년 1학기 전면등교 4개월이 마치 엉겁의 세월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글이 희망적으로 바뀝니다 3학년 1 학기는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왠지 여기다 쓰면 안 될 거 같고요...쪽지 주시면 알려드릴게요
다른 하나는 마지막 학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보다는 희망과 기대감이 더 컸습니다.
이게 2학년 2학기와 가장 대비되는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력하면, 성공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만약 마지막 학기에서 성공한다면,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희망.
실패하더라도 억지로 마음을 다잡으며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세 번째 이유는 3학년이 되면서 수행평가의 난이도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입니다. 아닌가?
수행평가의 절대적인 양 자체는 크게 줄지 않았으나(ㅠ.ㅠ),
제가 싫어하는 발표와 모듬 수행의 양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저는 확신의 I에요 국제고 오면 안 됐음 ㅋㅋ 보고서 제출식의 수행평가가 위주였는데, 그나마 그게 훨씬 나았습니다.
그리고 수행평가를 할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것 외에도 자잘한 이유들이 많았습니다.
봄과 여름의 풍부한 일조량과 따뜻한 기온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좀 많이 중요함
전면등교를 감안하여 석식 한 끼만 굶고 중식은 꼬박꼬박 먹은 것 그냥 1점대 반포기해서 그랬는데,,,
막대한 양의 시험범위〔100점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줍니당)
모의고사 보는 날이 늘어남(수시파이터인 저에게 모의고사는 힐링 데이라....)
2학년 2학기보다는 낮은 목표(초기 목표는 두 등급 하락만 막자는 것이었습니다....)
2학년 2학기를 완전히 망쳐버렸기에 월 해도 2학년 2학기보다 등급은 모르겠고 만족도가 높을 거라는 사실
3학년 1학기는 2학년 1학기처럼 활력 넘치게 공부하지도, 2학년 2학기 같은 생지옥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매일 디데이까지 몇 초(…)가 남았는지를 세며 거기서 하루하루 에너지를 얻어 갔던 것 같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낮지도 않은 페이스를 그저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2학년 때 하도 일희일비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감정도 평온했습니다. 근데 친구가 그건 아니라네요 ㅋㅋㅋ 우는 횟수도 많이 줄어들고 수행을 망쳤다고 그날 야자를 갖다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망할 체력...은 여전히 모자랐지만 겨울방학 때만큼은 아니었습니다.
2학년 1학기와의 지긋지긋한 비교... 그것도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참을 만 했습니다.
그렇게 중간고사도 넘기고 기말고사도 넘겼습니다.
격주등교 시절처럼 완벽한 점수는 아니었지만,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보다는 높은 점수였습니다. 중간고사 기준이고 기말고사는 아직 점수 몰라요 감이 안잡히지만 확실한 건 노백은 아님
마지막이라는 단어 하나로 버틴
1045만 4400조, 17만 4240분, 2904시간, 121 일, 4개월이 지나,
마침내 2022년 7월 1일 오전 11시 20분, 내신이 끝났습니다.
저는 지난 10개월 15일 동안 가장 간절하게 원하던 지위인, '내신 끝난 고3’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자퇴할 위험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도 없습니다.
충격적일 만큼 힘들었던 고양국제고 첫 등교날, 저는 고졸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를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1개월이 지나, 저는 살아서 고졸 확정입니다.
특목고 합격 때까지만 해도 저는 오만했습니다. 제가 잘나서 합격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고양국제고에서 보낸 5학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격주등교 수학 학원
문과생에게 특화된 학교의 커리큘럼
학교와 집의 가까운 거리
대부분 괜찮았던 등급 운(문 닫은 적이 많았음)
문이과 통합(일반고에 대한 미련을 싹 없애 주었음)
3학년 1학기를 편하게 보내도록 도와주신 학교 선생님들
+a
이 요소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저는 고졸을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저찌 졸업은 하더라도 수시를 끝까지 잡지 못했겠죠.
사실 고등학교 와서 만난 모든 분들이, 모든 상황이 제가 졸업하도록 도와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졸업하게 해 주셔서,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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